2017년 9월 21일 목요일

아크레 Acre의 몰락과 교황의 무역금지령이후 동방무역 -북방루트를 중심으로

아크레 Acre의 몰락과 교황의 무역금지령이후 동방무역 -북방루트를 중심으로
아크레 Acre의 몰락과 교황의 무역금지령이후 동방무역 -북방루트를 중심으로.hwp


목차
<목차>
Ⅰ. 머리말
Ⅱ. 북방루트의 성장 배경
Ⅲ. 북방루트의 교역상 이점
Ⅳ. 북방루트를 통한 인적 물적 교류
Ⅴ. 북방루트의 쇠퇴
Ⅵ. 맺음말


본문
당시 북방루트의 안전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기록이 있다. 발두치 페골리티(Francesco Balducci Pegolotti, 1310-1347)는 그의 '상인안내서'에서 북방노선을 따른 여행의 난관을 묘사했다. 그러나 그가 저술하던 시기인 1340년대는 안전한 통행과 길 주변에 만들어진 편안한 역참들에 의해서 어려움이 상당히 개선된 상태였다. 또한 그는 "타나에서 북중국까지의 여행길은 그 길을 이용해본 여행자들에 의하면 밤이나 낮이나 완전히 안전하다"고 그의 독자들을 안심시켰다.
13C의 몽골 인들은 세계경제에 전략적인 요충지도, 독특한 공업 생산력도, 운송 기능도 제공하지 못하였지만, 육로를 보다 적은 위험과 보다 낮은 보호 비용으로 경감시킴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영토를 지나는 교역로를 열었으며, 적어도 단기간 동안은 좀 더 남쪽에 있는 노선들의 독점을 깼다.


Ⅳ. 북방루트를 통한 인적 물적 교류

13세기 몽골제국의 등장과 함께 이른바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가 형성되면서 콘스탄티노플에서부터 흑해를 통해 중앙아시아의 거대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북방노선이 주요한 교역 루트로 대두하게 되었다. 실제로 이 시기에 이 북방노선을 통해 당시는 키타이(Cathay)로 알려졌던 지금의 중국까지 여행한 적지 않은 수의 유럽인들이 있었다. 그 중 단연 대표적이라 할 수 있는 이가 바로 베네치아 출신의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이다. 물론 마르코 폴로가 육로를 통해 키타이까지 여행했던 최초의 유럽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후 많은 유럽인들의 동방에 관한 상상과 모험을 자극하고 그 시기 동방에 대해 가장 정제된 기록을 남긴 것에 관해서는 최초의 유럽인이라 할 수 있었다.
마르코 폴로가 동방으로의 여행을 시작한 해는 1271년으로 그의 아버지와 숙부를 따라서였다. 그의 아버지와 숙부 즉 니콜로와 마페오 폴로 형제는 1260년 콘스탄티노플을 떠나 몽골제국의 영토를 거쳐 키타이까지 갔다가 1269년에야 베네치아로 돌아왔다. 남겨진 기록


참고문헌
참고문헌

재닛 아부-루고드, 박홍식 이은정 옮김, 유럽 패권 이전 13세기 세계체제 , 까치, 2006.

고명수, 쿠빌라이 정부의 大都건설과 역참교통체계 구축 , 중앙아시아연구 15, 2010.
E. Ashtor, "The Crisis of Levant Trade", Levant trade in the later middle age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3.
Gherardo Ortalli, "venice and papal bans on trade with the levant : The Role of the Jurist".



키워드
동방무역, 북방루트, 무역, 금지령, 아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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