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7월 31일 월요일

한문학론 이인로의 `용사론(用事論)`및 그와 관련된 한시 분석

한문학론 이인로의 `용사론(用事論)`및 그와 관련된 한시 분석
[한문학론] 이인로의 `용사론(用事論)`및 그와 관련된 한시 분석.hwp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이인로의 생애
2. 이인로의 문학관에 대하여
- 용사론에 대해서
(이규보의 신의론과 비교하여)
3. 이인로의 작품 분석
- 용사론이 드러난 한시 작품 분석
4. 이인로와 그의 용사론이 지니는 문학사적 의의
Ⅲ. 결 론




본문

Ⅰ. 서 론

작시론에서 이인로는 시는 언어의 의미가 제대로 갖추어진 경지에 이르러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시라는 것은 언어의 구조물 내지는 예술이라는 인식을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이인로가 옛 사람의 문장과 문체를 갈고 닦아 그 표현을 끌어서 쓰는 "용사"를 사용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의 이러한 문학사상을 바탕으로 한 그의 한시에서 용사가 어떻게 사용되며 어떤 작품에 사용되었는지, 또 용사가 사용된 그의 작품들이 어떠한 의의를 가지는지를 그의 문학작품을 통해 보다 깊이 있게 알아보도록 하겠다.

Ⅱ. 본 론

1. 이인로의 생애

이인로에 대한 고려사 열전의 기록에선 먼저 이인로의 출신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인로의 가계는 경원이씨(慶源李氏)로 고려 전기 3대 가문으로 손꼽히던 문벌귀족의 대표적 집안이다. 이는 흔히 그를 문신귀족의 후예로서 그 문풍을 계승하였으며, 복고주의적 성향에 젖어 있었다는 전기(傳記)적인 근거가 된다.
다음으로는 이인로가 정중부의 난 당시에 승려가 되었다가 그 이후에 환속하였다는 기록이다.『파한집』 발문에는 어려서 부모를 잃은 이인로가 숙부인 승려 요일(寥一)이 양육했다는 기록이 있어 유년 시절은 사찰에서 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가능하며, 이것은 불교사상과 관련하여 이인로의 사상적 측면을 살펴볼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이제 살펴볼 것은 오세재, 임춘 등 다른 여섯과 더불어 시와 술로 즐겼다는 기록이다. 이 일곱 사람의 모임을 죽림고회(竹林高會)라 부른다. 위에 실린 고려사의 기록처럼 중국 진(晋)나라 시대의 죽림칠현(竹林七賢)에 비교하여 해좌칠현(海左七賢) 등으로 일컬었다. 죽림고회의 문인들은 자발적으로 자연에 은거하며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겼다기보다는, 중앙의 정치권력에서 밀려나 어쩔 수 없이 강호에 머물면서 대신 문명(文名)을 떨치려 했던, 즉 내적으로는 세상에 나아갈 것을 희망하면서도 실제 신분은 강호인의 위치에 머물렀던 사람들로 보여 진다.


키워드
용사론, 이인로, 한문학론, 用事論, 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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